일제 민족말살정책: 대륙 침략을 위한 비극적 실험
서론: 제국주의의 광기, 조선을 지우다
1930년대, 동아시아는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 야욕으로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습니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제는 20년이 넘는 통치 기간 동안 무단통치와 문화통치를 번갈아 가며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들의 야심은 단순한 식민지 통치를 넘어, 전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광기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민족말살정책’입니다.
이 정책은 단순한 폭력적 지배가 아니었습니다.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뿌리째 뽑아내어, 그들의 언어, 역사, 문화, 정신을 완전히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비극적인 시도였습니다. 일제는 조선인들을 태평양 전쟁의 총알받이로, 혹은 제국을 위한 무한한 노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고자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제가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며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지우려 했던 배경과 그 구체적인 실태, 그리고 그럼에도 꺾이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저항을 되집어 보고자 합니다.

본론: 대륙 침략 전쟁의 서막과 민족 정체성 말살
1. 대륙 침략의 시작: 만주사변(1931)과 총동원 체제의 필요성
민족말살정책의 시작은 1931년 만주사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제는 만주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철도 폭파를 조작하는 자작극을 벌였고, 이를 빌미로 만주를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자,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시한 제국주의의 노골적인 야심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만주를 손에 넣은 일본은 다음 목표인 중국 본토를 향한 야심을 드러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군사력과 물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쟁 규모가 커지면서 식민지 조선은 단순한 착취의 대상이 아닌, 전쟁 수행을 위한 완벽한 후방 기지이자 인적·물적 자원의 보급처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진 민족은 언제든지 독립을 꿈꾸며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제는 조선인들을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개조하여 전쟁에 자발적으로 동참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처럼 만주사변은 민족말살정책이 단순한 지배 정책을 넘어, 일본의 생존과 직결된 군사적 전략으로 격상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저항에 대한 통제 강화: 윤봉길 의거(1932)와 신사참배 강요
만주사변 이후 일제의 무력 침략은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민족의 저항도 거세졌는데, 그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입니다.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에 폭탄을 던져 큰 타격을 입힌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조선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동시에, 일본인들에게는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일제는 이 같은 조선 민족의 저항 의지를 뿌리 뽑기 위해 사상적, 정신적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35년부터 본격화된 신사참배 강요입니다. 일제는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도를 내세워 전국 각지에 신사를 세우고, 조선인들에게 일본의 신과 천황에게 참배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라고 맹세하고, 충성을 다짐하는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이들은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심지어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3. 총동원 체제의 완성: 중일전쟁 발발(1937)과 황국신민서사 제정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은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전쟁은 전면전 양상으로 확산되었고, 일본은 모든 자원과 국민을 동원해야만 했습니다. 일제는 조선인들을 전쟁 동원의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했고, 이를 위해 정신적 무장을 강요했습니다.
이 시기에 제정된 것이 바로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입니다. 초등학교 학생들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선인들은 아침마다 이 서사를 암송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해 천황폐하께 충의를 다하겠습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 서사는 조선인의 정체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일본 천황에게 복종하는 존재로 전락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처럼 교육과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한 황국신민화 정책은 조선인들을 일본의 전쟁 기계로 만드는 첫 번째 단계였습니다.
4. 언어와 교육의 말살: 조선교육령과 조선어 사용 금지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의 언어와 역사를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일제는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을 발표하여 보통학교에서 조선어 과목을 폐지했습니다. 이로써 조선 학생들은 모국어를 정식으로 배우는 것을 금지당했습니다. 심지어 학교와 관공서, 심지어 가정에서까지 조선어 사용을 억압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조선말을 사용하는 자는 불량하다"고 매도하고, 학교에서 조선말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벌칙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일본의 역사와 문화만을 가르쳤습니다. 조선의 역사를 '정지된 역사'라고 왜곡하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문명화'의 과정으로 미화했습니다. 이는 어린 세대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줄 기회를 박탈하고, 그들을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종속시키려는 교활한 시도였습니다.
5. 총력 동원 체제의 구체화: 국민총력조선연맹(1940)과 지원병제 실시
전쟁이 길어지면서 일제는 조선을 더욱 철저히 통제하고자 했습니다. 1940년 출범한 국민총력조선연맹은 이러한 통제 정책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이 조직은 조선인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총체적인 기구였습니다. 조선인들은 이 단체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했고, 각종 전쟁 협력 활동에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했습니다. 이는 농촌의 식량 수탈에서부터 금속류 공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을 전쟁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1938년부터 지원병제가 실시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입대하는 '지원병'이었지만, 실제로는 각 지역과 학교에 할당된 목표 인원을 채우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조선 청년들을 일본군의 최전방으로 내몰아 희생시키려는 비인간적인 정책이었습니다.
6. 마지막 정체성 말살: 창씨개명(1940)과 조선어학회 사건(1942)
민족말살정책의 가장 상징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은 1940년 창씨개명이었습니다.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일본식 성과 이름을 강요했습니다. 이름은 개인의 정체성과 가문의 역사를 담고 있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를 빼앗는 것은 곧 개인의 존재와 민족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위였습니다. "내 선조가 물려준 이름이 부끄러워 스스로 버리는 것 같아 비참했다"는 당시 사람들의 증언은 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줍니다.
창씨개명은 '민족말살'의 정점을 찍는 행위였다면,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은 조선 민족의 언어를 완전히 뿌리 뽑으려 했던 최악의 탄압이었습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우리말 큰사전을 편찬하려 한 노력이 일제에게 '조선 독립운동을 위한 준비'로 비쳐지면서, 이들은 모조리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는 조선 민족의 정신을 지키려 했던 지식인들의 노력을 짓밟고, 우리말을 완전히 소멸시키려 했던 일제의 악랄한 계획을 보여줍니다.
결론: 지울 수 없었던 민족의 혼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은 단순한 식민지 통치를 넘어선,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교활하고 비극적인 정체성 말살의 시도였습니다. 그들은 조선 민족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우리의 언어와 역사, 이름과 정신을 체계적으로 지워나갔습니다. 이 모든 정책은 일본의 대륙 침략이라는 거대한 야심 아래에서 이루어진 필연적인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한 가지를 간과했습니다. 바로 민족의 혼과 저항 정신입니다. 우리말을 쓰는 것이 금지되었을 때, 사람들은 몰래 집에서 우리말을 가르쳤고, 독립운동가들은 목숨을 걸고 언어와 역사를 지키려 했습니다. 창씨개명을 강요받으면서도 많은 이들은 끝까지 자신의 이름을 지켰고,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면서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조국의 독립을 향한 염원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지우고 싶어 했던 우리의 이름과 언어, 역사는 해방 후 더욱 찬란하게 부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자유롭게 쓰고, 우리말로 이야기하며, 우리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냈던 수많은 선조들의 피와 땀, 그리고 꺾이지 않는 용기 덕분입니다.
일제는 민족을 말살하려 했지만, 오히려 우리 민족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는 것을 넘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지켜나가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